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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다?  Part 2 – 열반, 무지개 저 너머 보이지 않는 삶의 이상

언제나 새 집 같은 세계 곳곳의 유명한 박물관에는 많은 고대 그리스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예술이 인간에게 일으키는 감정이 숭고한 종교적 체험과 비슷하다 얘기한 유명한 종교학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종교의 고대 그리스 사회는 이름을 외우기도 힘들 만큼 많은 신들과 그들이 사는 신전을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처럼 물질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아름다운 모습으로 표현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 조각과 유물들은 오늘날 우리가 박물관에서 보고 것처럼 단순한 아름다움의 표현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법당의 불상에 절을 하듯 당시의 사람들도 비슷하게 귀한 것들을 그 앞에 바쳐 정성스럽게 숭배하였지요. 그 많은 신들은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보이지는 않지만 현실이라 생각했던 종교적 믿음과 그 경험의 표현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신화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신들은 인간과 비슷한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보다 더 욕망하고 사랑하고 질투하며 미워하지요. 그들이 인간과 다른 점은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로 세상의 한 영역에 자신의 힘을 미치며 인간의 삶에 긴밀히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들의 이야기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허황된 얘기처럼 들릴 테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 생생히 살아움직이는 현실이었음은 의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세계 여러 곳곳에서는 수많은 신화와 전설이 탄생했고, 그 가운데 어떤 것은 현재까지 살아남아 종교라 불리고 있지요. 오늘날 세상의 많은 종교들은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이 보이는 세계와, 종교적 믿음의 저 보이지 않는 세계,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이것은 왜 혹은 어떻게 인간과 세상은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답 대답이며, 존재의 신비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경험은 종교의 원형이자 뿌리일 것입니다. 신과 신들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종교적 경험의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류의 아름답게 피어난 신화의 시대를 거쳐, 이성과 사유 그리고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철학이 등장합니다. 종교가 보이지 않는 세계와 그것에 대한 인간의 경험을 이야기, 은유, 또는 상징 등을 통해 보이는 것이라면,   철학은 이성의 언어와 논리를 통해서 보이는 세상의  경험을 설명하는 영역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르네상스 이후 철학은 과학은 낳는 뿌리가 되었고, 그 후 과학은 가설과 실험을 통한 이론과 법칙의 끊임없는 발견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기술의 문명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불교 또한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함께 아울러 설명합니다. 먼저 불교는 보이는 세계 안에서 인간이 가지는 삶의 경험을 고통, 무상, 무아, 오온, 십이계, 십팔처 등등 언어를 통해 설명을 하고요. 사성제의 가르침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은 보이는 세상과 그 속에서의 우리 인간과 여러 존재의 삶을  고통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고통의 원인이 되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존재의 모습을 탐진치, 무상/무아 등등의 언어로 설명하시고요. 인간의 존재는 더 자세히 오온, 십이처, 십팔계 등등으로 설명이 되며, 부처님은 이처럼 철저한 분석과 논리의 언어를 통해 인간의 경험과 보이는 세계의 현실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불교가 설명하는 삶의 모습이 우리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는 인간이면 누구나 이 보이는 세상 속에서 보편적 삶의 경험을 함께 나누어 가지기 때문일 테지요. 어느 사람들의 주장대로 불교가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었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보이는 세계와 그 경험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 끝이 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윤회, 업, 연기, 열반과 깨달음 등등의 언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상의 모습과 원리를 설명하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윤회, 업, 연기의 법칙을 바탕으로 세상과 존재는 흘러간다 얘기합니다.  다시 스스로의 노력과 깨달음을 통해 인간이 신보다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보여주시며, 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존재의 이상적 모습을 설명합니다. 분명한 것은 윤회, 업, 연기, 열반의 언어가 그리는 세상의 모습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성과 언어의 논리가 힘을 미치지 못하는 종교와 믿음의 영역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교는 철학이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이유는 아마도 보이는 세계를 설명하는 불교의 사유와 언어가 어느 철학의 사상보다 정확하고 정교하기 때문일 테지요. 하지만 이 주장이 위험한 까닭은 이것이 자주 듣는 사람에게 편견을 만들어 진리의 말씀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이 인간의 삶에 줄 수 있는 의미와 가능성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을 했듯, 불교를 철학이라 믿는 사람은 의식과 신앙으로의 불교를 자주 미신이라 여겨 부정하여 불교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을 막아 버립니다.  경전에서 부처님께서 당신의 가르침은 진실인 동시에 유용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 진리의 유용함은 단순히 인간이 부처가되는 깨달음 뿐만 아니라 고통 속에 사는 다양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도 포함이 될 것입니다. 불교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교적 의식과 신행의 형태는 인간의 다양한 고통에 대한 불교의 적극적 대응이며 자비의 표현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깨달음을 통해 경험한 세계와 존재의 모습을 분명하고 명쾌한 언어로 설명한 불교는 분명 철학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지만, 존재의 신비를 통해서 깨달음을 존재의 이상으로 설명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분명 철학 이상의 것입니다. 누군가 불교를 철학이라는 좁은 범주로 한정하려 할때 아니라고 설명을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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